이진용이 수집을 통해 그려낸 시간의 흔적들

머릿속 기억을 캔버스에 그려낸 사실적인 그림들 선보여

왕진오 기자 2012.03.09 16:06:44

어두운 방안을 비추는 백열전구의 은은한 불빛처럼 벽에 걸린 그림에는 전기를 연결시켜놓은 듯 너무도 사실적으로 시선을 모은다. 마치 실제 전등과 책상을 옮겨다 놓은 듯 그 생생함은 시각의 혼돈마저 가져온다. 극사실 기법으로 고서와 여행가방, 카메라와 같은 골동품을 그리던 이진용(51)작가가 9일부터 4월 22일까지 청담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진행하는 ‘수집된 시간’전시의 작품들의 첫 느낌이다. 작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대상들은 그가 직접 수집한 물건들이다. 해외 전시를 다니면서 수집한 도자기, 축음기, 카메라, 고서들이다. 작가의 수집품들은 오래된 손때와 더불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들이다. 그가 수집한 골동품에 대한 애착은 이제 박물관을 지어도 될 만큼 방대한 양으로 쌓이게 됐다. 그간 오래된 책들과 여행 가방, 최초의 카메라 등 골동품들을 주로 그리던 작가가 이번 전시에는 도자기에 집중하여 완성시킨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가가 지난 4년간 50여 점에 육박하는 한국의 도자기들을 캔버스에 담아낸 것이다.

청자부터 백자, 생활 자기에서 국보급 도자기까지 작가의 소장품이거나 때로는 지인들에게 빌려온 여러 도자기들을 직접 관찰하고 머릿속에 넣어서 세세한 손끝으로 화면에 옮겨 담아냈다. “모아놓은 사물들을 머릿속에 기억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마치 스캔을 하듯이 화면에 그려냅니다. 마치 컴퓨터의 파일을 보관하는 폴더처럼, 다양한 기억들을 모아 두었다”며 “수많은 소장품 중 제 마음에 용해되고 나서야, 그것을 화면에 그릴 수 있었습니다” 이진용 작가는 미술에 대한 공부를 독학으로 할 정도로 자신에게 철저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작품으로 마련된 재화를 이용하여 골동품을 꾸준히 모았다고 했다. 남다른 애착이 담긴 그의 그림에 대한 설명이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주목한 도자기 작업들이 다수 선보인다. 도자기가 다른 소장품에 비해 손길이 닿고 시간이 흘러도 그 투명함을 잃지 않기 때문이며 가장 한국적이고 당연히 보존되어야 할 우리의 유산이라는 설명이다. 이진용의 작업이 여러 다른 작품과 비교될 수 없는 것은 작가가 도자기 자체의 존재를 봉인하려는 듯 정밀하고 극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도자기 자체가 뿜어내고 있는 사연들에 집중하여 각각의 어울리는 색과 공기로 그들을 담아내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극사실적인 재현이면서도 추상적인 이진용만의 도자기가 되는 것이다. 전시장에는 그간에 사진과 같다는 이야기를 너무 듣게 되어서, 자신이 보고 그린 수집품 들이 책장을 이루어 전시장의 한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물건들은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소장품들로서, 작가의 작품을 보는 새로움과 함께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계기도 제공하고 있다.<왕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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