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의자를 바라보는 누구라도 그 곳에 앉아서 책을 펼치며 사색을 하거나, 편안함을 느끼며 휴식의 시간을 보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생명체의 흔적이 보이지는 않지만 의자라는 사물은 일상 인간 존재를 은유하게 만들어준다. 당시의 상황이 어떨지라도 의자가 머릿속에 남긴 기억의 잔상은 항상 편안함 또는 고독을 상징해주고 있다. 감성을 가지고 자신만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화가들에게 의자는 어떤 모습으로 캔버스에 그려질까라는 궁금증을 한 폭의 그림으로 설명해주는 화가 지석철(59)이 극사실주의 작품으로 그려낸 다양한 의자 그림들을 10월 10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노화랑에 펼쳐놓는다.
작가의 그림에는 인간 존재를 은유하고 의미하는 의자, 부재(不在)라는 명제가 역설하는 존재에 대한 기억과 소중함, 만남과 이별,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밀려오는 고독, 그 존재가 꿈꾸는 희망의 메시지들 그리고 세월의 흔적들에 대한 애착과 연민이 담겨있다. "나의 의자는 오랜 시간 의자가 아닌 또 다른 어떤 것이 되어도 좋을 존재의 표상으로 읽혀지고 다가가기를 원했죠, 그것은 분명 내가 가진 서정의 감성을 함께 공유하고픈 작의와 무관치 않으며, 그러한 정서로부터 나는 아직 멀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너무도 사실적으로 그려내 마치 누구라도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의자들은 일상 속에서 존재의 의미가 발생하고 스러지는, 별 관심 없이 지나칠 수도 있을 사물들의 이미지와 작가의 '의자'가 만나게 되고 교감하면서, 새로운 사연들이 제자리를 잡는다.
첫 인상에 다소 생소하고 낯선 장면이 연출되고 또 다른 상상을 자극하는 작가의 화면에는 다양한 내러티브를 엮어내는 인간사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며 무언의 대화 속으로 빠져든다. "나는 언제나 회화의 재현을 생각할 때 눈과 손이 옮기는 정치(精緻)한 묘사력은 그저 시작에 불과할 뿐, 대상과 이미지를 응시하는 개인적 취향을 바탕으로 어떻게 각색되고 연출되었는가에 재현의 의미를 두고 싶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 지석철은 사물과 이미지에 얽힌 이야기들을 잔잔한 모노톤의 힘을 빌려 간결하게 제시한다. 이를 통해 낯선 조합과 이질적인 것들의 돌연한 공존을 통해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재발견하게 되며, 기억의 윤회 속에서 우리를 머물게 하는 유의미한 순간의 발현과 애잔함이 묻어나는 자신의 몸짓을 선보인다. 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