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진, "유행을 따라 가는 그림보단, 내 그림을 그리죠"

회화가 가지고 있는 '평면성'에 대해 치열한 고민 펼쳐

왕진오 기자 2012.11.21 10:57:51

초록색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그림으로 한 때 초록의 작가로 불리던 화가 송명진(39)의 그림이 살색의 물감으로 채워진 작품을 11월 21일부터 12월 15일까지 종로구 팔판동 갤러리 인에서 선보인다. 송 작가는 "이번 작품들은 화가로서 제가 걸어가는 길의 과도기적 작품들입니다. 색깔이 변했다고 제 그림이 변한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여정의 궤적을 보여주려는 과정으로 이해를 바란다"고 말문을 열었다. 전시장에 걸린 그림들에는 대표색이라 할 만한 초록색 그림을 찾아볼 수 없다. 가상의 캐릭터인 '손가락 인간'들도 사라졌다. 대신 화면의 이미지들은 단순해졌고, 생활주변에서 본 듯한 원형의 입체도형들로 채워졌다.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사물들은 흡사 블랙홀과 같은 시커먼 구멍들의 언저리에서 놀고 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살아있는 생명체를 현미경으로 확대시켜서 본 모습을 연상케한다. 구부러지고, 미끄러지고, 흘러내리고, 새어나오며 마치 관람객 들이 한번쯤은 경험해 본듯한 상황이 그려져 있다. 눈 앞에서 보는 공간 너머에 실재하는 촉각적 기억을 그림으로 표현하려는 작가가 그동안 추구하던 주장을 무위로 돌리는 듯 하면서도 기존의 그것보다 강한 인상을 전달한다. 송 작가가 이미지의 평면성에 대해 고민하다가 3D로 표현하던 작업을 다시금 입체 평면으로 회귀한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송명진 작가는 공들여 그렸다가 마구 지워버리고, 순탄하게 잘 흐르는 듯하다가 갑작스런 변덕으로 망쳐버리는데, 캔버스 화면은 그저 이미지의 놀이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한다.

"화면의 이미지들을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원래 비롯되었던 자리로 돌려보내고 있는 중인 듯 합니다. 발 밑 구멍으로 숨기건, 낙서로 뒤덮어 지워버리건, 구석으로 밀쳐놓건 말이죠. 이것을 다른 이미지들이 또 다른 이미지들이 놀 수 있도록 편평한 바탕으로 다시 비워놓는 것과 다름이 아닙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송명진 작가는 평생 걸어야 할 그림을 현재의 작품으로 귀착시키지 말 것을 부탁한다. 스스로 도달할 목적지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작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유행에 민감하게 조류를 따라 하기보다는 자신의 작업이 시대를 관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려낸 작품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기도 희망하고 있다. 왕진오 기자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