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활동하는 장애인 예술가들이 많은데, 괜히 제가 받은게 아닌가 해 찜찜해요." 지난 7월 15일 '자랑스러운 한국장애인상' 문화예술 부문에 선정된 석창우 화백(56)에게 수상소감을 묻자 그는 겸손한 한마디로 답한다. 올해로 23년째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는 석창우 화백은 '의수 화가'이다. 1988년도, 서른 초반에 들어 처음 붓을 잡은 석창우 화백은 이 전에는 그림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온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당시 유망했던 공고와 공대를 나와, 중소기업의 전기관리자로 근무했던 그는 1984년 불의의 전기 사고로 양 팔과 발가락 일부를 잃었다. "눈을 뜨고 보니 양 쪽 발가락 일부가 없었죠. 병원서 1년 반정도를 지내며 12차례의 수술을 받았어요. 결국 두 번에 걸쳐 양쪽팔까지 절단했죠."
평범한 직장인에서 한 순간의 사고로 양 팔을 잃은 장애인이 된 그는 부인과 딸, 아들과 함께 전주로 내려가 몇 년간 요양하며 지냈다. 그 때 그가 의수로 붓을 들게 된 생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 "막내인 아들이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제가 사고로 다치게 됐어요. 딸은 사고 전 같이 손잡고 놀러도 다니고 했는데, 아들에겐 그러지 못해 늘 미안했죠. 네 살이 되도록 제게 '뭘 해달라'는 응석 한 번 없던 아들이, 어느날 그림을 그려달라더군요." 처음으로 아들이 자신에게 요구했던 것을 아빠로서 꼭 해주고 싶었다는 그는, 아들을 위해 의수로 펜을 들어 그림 그리기를 시도했다고 한다. "아들, 딸에게 '팔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아빠'가 아닌 '팔은 없지만 뭐든 할 수 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계기로 그림을 시작하게 됐고, 지금도 그 마음은 늘 변함 없어요." 그는 가족으로부터 새로운 꿈을 찾고 제 2의 삶을 걷게 됐다. 부인은 오직 그가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게끔 든든한 후원자로서의 내조를 해주었다. "아내가 그러더군요. (살림에) 경제적인 부분은 자신이 책임질테니, 나는 그림에만 몰두하라고. 아내에게 참 고마웠죠."
가족의 사랑에 다시 희망을 품고, 다시 꿈을 꾸게된 그는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기 위해 화실을 전전했다. 하지만 찾아간 화실마다 양 팔이 없는 그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뿐 이었다. "화실마다 어렵겠다는 말 뿐이었죠. 그러다 우연히 여태명 선생님(현 원광대 미대 교수)을 뵙게 됐어요. 여태명 선생님 역시 처음에는 힘들거라 하시더군요. 교습 한 달 후 제 실력이 늘자, 제대로 한 번 배워보자 하시더군요." 그는 여태명 선생을 만나 본격 적으로 그림에 입문하게 됐다. 이후 전주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온 그는 '누드크로키'를 처음 접하게 됐고, 자신이 그간 배워온 서예와 누드크로키의 접목을 시도하기로 결심했다. 동양 재료인 먹과 서양 기법인 크로키의 접목으로 시작한 그 작업이 바로 오늘날 석화백의 누드크로키로 탄생한 것이다. 이후 처음 붓을 잡은지로부터 10년만인 1998년도에 첫 개인전을 열게 됐다. 그리고 어느덧 29회의 개인전을 마친 중견 작가로의 명성에 우뚝 서게됐다.
"사고로 팔을 잃었지만, 덕분에 얻은 것이 많았어요.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저는 계속 전기기술자로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았겠지요. 하지만 사고 이후 저는 그림을 만나 예술가로의 삶을 살게 됐어요. 정말 값진 행복을 얻은 셈이죠." 할 수 있는 일이 한정되다 보니 홀로 그림 그리는 일에만 더욱 몰두 하게 됐다는 그는, 좋아하는 일이 업이되어 행복할 뿐이라고 말한다. "양 팔이 있는 사람은 뭐든 할 수 있다보니, 한 가지 일만을 몰두하기 힘들죠. 사람들도 만나야하고, 이것 저것 할 일이 많으니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보니 제가 할 수 있는 '그림'에만 몰두했고, 그 덕에 제가 원하는 삶과 길을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빨리 찾게 된 것 같아요." '잃음'과 '버림'으로부터 더 큰 것들을 얻었다고 말하는 석창우 화백의 얼굴에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긍정과 행복이 가득하다. 그의 이런 긍정적 에너지는 작업에 역시 고스란히 묻어난다. 스포츠 선수의 역동적 움직임을 먹으로 크로키하는 그의 작업은 에너지가 넘친다. 양 팔이 없는 '의수 화가'의 작업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할만큼 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그의 작업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손으로 그림을 그리면 손목의 힘으로만 그림을 그리게 되지만, 저는 팔이 없다보니 온 몸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게 되죠. 느낌이 정말 달라요. 그릴 때 힘은 들지만, 이건 저만의 큰 장점이 아닌가 해요."
그의 붓 끝으로 전해지는 희망과 긍정의 에너지는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도 충분했다. TV의 인기 프로그램에서도 3년 동안 그에게 출연 러브콜을 보냈다. 사람들에게 떠들썩하게 알려지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던 그는 출연을 번번히 거절해오다, 지난 10월 첫 공중파 방송까지 출연하게 됐다. "출연요청을 하도 하길래, 대체 어떤 프로그램인지 찾아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하더군요. 그들의 동적인 모습을 그려보고싶다는 생각에 결국 출연을 결정했죠." 이후 다양한 연극 무대에서도 시연을 펼쳐보이며, 그는 '예술가 석창우'로 세간에 명성을 널리 널리 쌓아 갔다. 올해 2월에는 평창 올림픽 실사단의 초청으로 시연에도 나섰다. 5미터 크기의 화선지에 의수로 힘찬 획을 그어나가는 그의 모습은 외국인 관계자들에게 역시 큰 감동을 끌어냈다. "세간의 관심은 좋지만, 연연하진 않아요. 제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늘 변함없이 오로지 '가족'을 위한 것이니까요. 가족에게 뭐든 할 수 있는 멋진 아빠,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저의 변함없는 목표이고 꿈이죠."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석 화백. 그는 앞으로 도전하고픈 또 다른 꿈에 대해 나지막이 얘기한다. "향 후 세계 각 나라를 전전하며 더 많은 전시를 열고 싶어요. 한국을 넘어 세계 각국의 전통공연에서도 시연 무대를 펼쳐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남은 생을 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