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 아트스펙트럼 ⑦ 박민하] '아날로그 달'에서 '디지털 화성'까지 우주 판타지 쫓기

윤하나 기자


마션인터스텔라등 최근 개봉된 SF 영화들은 모두 실재감 넘치는 우주 영상을 앞세우며 도래할 우주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선사했다. 우리는 이 영화들 속 우주가 실제 우주를 그대로 보여주는 영상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을 보는 내내 현실일지 모른다는 환영에 사로잡힌다. 나사(NASA)가 공개하는 우주 이미지나 소리 자료들도 우리가 바라보는 우주를 보다 구체적인 방향으로 인도한다. 우리에게 우주란 어느 순간부터 매일 보는 태양과 달이 아니라 나사가 찍은 사진, 혹은 우주 영화의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스펙터클한 무() 세계 또는 지구 이후의 미래를 떠올리게 하는 막연한 환상들이다.

 

 

주어진 정보를 그대로 믿는 이가 있는가 하면 직접 발로 뛰어 현장을 확인해야 발 뻗고 잘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박민하 작가는 명백히 후자의 경우다. 작년까지 일민미술관과 시청각에서의 전시를 통해환영과 실재를 파헤치는 작가로 알려졌다. 이전 작업들은 대개 미디어를 통해 접한 이미지의 환영을 실재적 경험을 통해 재인식하는 과정을 담았다.

 

그가 이전까지 포착한 환상은 다음과 같다. 할리우드와 인접한 LA에서의 유학 시절 눈을 볼 수 없는 그곳에서 1톤 이상의 가짜 눈이 거리에 뿌려진 현장이나, 이라크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그와 유사한 사막지형을 미군이 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전쟁난민들을 연극배우로 소비하는 광경, 실제 JSA와 꼭 닮은 영화 'JSA'의 촬영 세트장에서의 촬영 등 진짜가 아니지만 카메라(영상)에 담기는 순간 진짜인 듯 환상을 만드는 매체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이전 작업에 대해 "무언가를 재현해낸 장소에 흥미를 느꼈다"고 말하며 "해당 장소에 가보면 늘 말이 안 되는 광경이라고 느낄 때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영상화되면서 이 가짜 공간이 진짜 같은 환영이 되는 순간을 작가는 여러 번 경험했다. 작가는 그 과정을 발견하기 위해서 해당 장소를 필사적으로 찾아 떠난다.

 

 

리믹싱 타임스페이스 - 우주의 뒤섞인 시공간 되짚어 소화하기

 

박민하 작가가 2016 아트스펙트럼에 출품한 ‘Remixing Timespace(시공간 뒤섞기)'은 이전까지 작가의 주된 관심사인 환상의 작동원리를 파헤치는 방법을 그대로 따른다.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이전까지 LA, 이라크 사막과 유사한 미군 훈련장, JSA 등을 주목한 작가가 이번 작품에서는 우주라는 광활한 시공간으로 시선을 돌렸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판타지가 된 이미지와 판타지가 생산된 실제 장소의 간극을 담았다면, 이번엔 절대적인 양의 리서치를 통해 우주시대의 역사와 미래를 재조명했다


 

우리가 막연히 공상적인 미래로 여기는 우주에 대해, 그것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현장에 뛰어들어 우주 판타지의 역사를 되짚는 작업이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져 제공된 환상이 아니라 실제 나사(NASA)의 우주선 발사 기지를 방문하며 느낀 우주에 가기 전 과정의 숨겨진 이야기와, IT 회사들이 우주 개발을 시작하며 우주 법을 개정하는 등의 현실 상황을 병치해 담았다.

 

박민하 작가는 이번 전시에 2개의 스크린과 사진 작업 투모로랜드(Tomorrowland)’ 설치작업과 리믹싱 타임스케이프(Remixing Timespace)’ 영상을 출품했다


우선 리믹싱 타임스페이스를 살펴보자. 영상은 고대 문명부터 이어진 달 신화를 시작으로 현대의 화성 우주탐사의 현장을 경험하며 그 사이에서 발견된 내러티브를 담았다.


 

작가가 2015년 말 미국 플로리다의 나사 기지를 방문해 본 아폴로 1우주선 발사대는 "고대 신전을 닮아 있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온통 늪지대인 나사에서 그는 자연방사된 우주 유인원의 후세를 보기도 했다. 60년대 우주로 보내기 위해 키우던 원숭이와 침팬지들의 개체수가 급증하자 기지 인근의 야생동물 보호구역에 방사한 것이다. 이밖에도 짧은 기간 어렵게 방문한 나사 기지에 대해 말로 다할 수 없는 이야기가 함축적으로 영상에 녹아 있다.

 

직접 해당 장소를 경험하고, 돌아와 공격적인 리서치를 벌이면서 작가는 한 장소에서 각기 다른 시대에 달(60년대)과 화성(현재) 탐사선이 발사된 점을 주목했다. 달의 시대, 즉 신화와 제의의 낭만적 세계로부터 화성 시대, 즉 IT·과학의 신자유주의 시대로의 이행을 작가는 수행적 리서치를 통해 아카이브한 것이다. 여기서 수행적 리서치란 직접 장소를 방문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어떤 연구 가치 있는 주제에 관해 자료 수집하는 과정을 말한다. 리서치를 기반으로 하는 많은 작가들과 구별되는 박민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판타지 발견을 시작으로, 해당 장소를 방문함으로써 자신의 리서치를 작동시킨다.

    

작가는 우리에게 심어진 전형적인 우주 이미지를 대신해 우주 탐사의 흔적, 자연과 신화의 모티프 그리고 사운드를 통해 방대한 양의 우주 내러티브를 그만의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우주 영화가 극적으로 만들어내는 우주의 이미지들과 달리, 작가는 우주라는 거대한 시간과 공간의 장소를 고고학자의 자세로 발굴해냈다.  


 


투모로우랜드 - 별의 패러다임

 

박민하의 전시 공간 초입에는 두 개의 영상과 4점의 사진이 설치돼 있. 첫 번째 영상에는 스타워즈의 오픈 시퀀스에서 자막이 먼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방식으로 2개의 우주 국제법 조항들이 화면에 떠오른다. 작가의 설명을 간략하게 전하면, 누구도 우주 영토의 주권을 주장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 시대(1963)의 우주 법과 소행성 채굴 기술을 가진 회사가 생기면서 민간 기업이 행성을 소유할 수 있도록 개정된 2015년의 경제학적 우주 법을 비교했다고 한다.

 

이 우주 법 개정을 접하면서 작가의 우주 탐사에 대한 관념은 더 큰 질문으로 확장됐다. '별에 의지해 패러다임이 바뀔까?'란 의문은, (소행성)을 사유재산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마치 공항에서 비행기의 출발-도착과 게이트를 알리는 모니터처럼 설치된 디스플레이에 두 시대의 패러다임을 대표하는 법 조항을 대표적인 SF영화의 모티프로 보여준다. 이와 함께 옆 모니터에는 아날로그 시계에서 디지털 시계로 넘어가며 달라진 시간의 오차 범위를 나타내는 시계가 표시됐다.


 

 

그동안의 리서치를 통해 탄생한 이번 전시는 보통의 관람객에게 그다지 친절한 편은 아니다. 작가가 리서치한 방대한 양의 자료와 이야기는 기자도 한번의 감상만으로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며 편집된 이미지들의 사이의 문맥을 알게 되고, 이 전시가 거대한 프로젝트의 리서치 과정인 동시에 첫 번째 결과물임을 깨달았다. 작가는, 화성과 풍경은 물론 토양 성분까지 똑같은 사막을 방문한다는 앞으로의 계획을 조금 언급하며 다음 작업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작가의 생생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이번 주 토요일(23) 리움에서 열리는 박민하 작가의 렉처 퍼포먼스에 참여해보자. 작가는 리믹싱 타임스페이스를 준비하며 모은 자료들을 협업 작곡가 Ivan Carames Bohigas와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통해 더 풀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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