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빛을 마음의 붓으로 그려낸 작가 하동철. 그가 생전에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아름다운 빛의 선들이 그의 5주기를 추모하며 한자리에 모였다.10월 12일부터 25일까지 인사동 공아트스페이스에서 진행되는 하동철 5주기 ‘빛(SUBLIME)’ 전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작품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최근 한국 동시대 미술의 흐름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5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빛'이라는 하나의 소재와 주제를 끊임없이 탐구한 그의 작업 때문이다. 1980년대 초, 하동철은 볼펜으로 수직선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드로잉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나이아가라 폭포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나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의 현상을 시각화하기도 하고 선을 그은 두 개의 필름을 엇갈려서 흡사 전자파의 패턴이나 열선(熱線)의 실체를 그려내었다.
생전에 그는 "그림 속에서 영원성을 볼 수 있겠는가? 영원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면을 드러내지 않고 물질과 대비되는 정신세계를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하동철의 선은 화면에 진동과 에너지를 유도하기 위해 물감을 머금은 실을 튕겨 화면에 흔적을 만드는 먹줄로 표현되고 있다. 특히 먹줄 튕김은 언제나 사선으로 캔버스에 그 궤적을 남김으로서 밀도감 있는 화면을 통해 극도의 긴장감을 유도하는 요인을 만든다. 2000년대 이후 제작된 그의 작품들은 빨강과 파랑 두 가지 색이 기조를 이루고 있다. 이전의 작업과 비교해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면 거친 붓질에 의한 표현적 바탕이 사라지고 대신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가 머무는 공간이 변화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가장 분명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작가의 체질적 조형의식으로 부터 온 결과이다. 하동철이 그려낸 색들은 빨강과 파랑의 빛 그리고 노랑, 하양, 검정을 빛의 보조 색으로 사용했다. 노란색은 빛의 광원을 유도하며 흰색은 화면에 공기 또는 공간성을 나타내기 위한 역할을 맡고 있다.
특히 흰색은 실제 빛을 연상시키며 주위의 빨강 파랑에 의해 더욱 절실히 빛나는 효과를 나타낸다. 먹줄의 튕겨진 선으로 나타나는 검정색은 화면에 진동과 에너지를 유도한다. 하동철의 빛은 캔버스의 기본적인 사각 틀을 벗어나 다양하게 조합되며 새로운 화면을 구성한다. 작가의 조형언어로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 빛은 평면 속에 부분과 전체, 중심과 변두리라는 구성을 도입하고 있으며 동시에 캔버스 틀로 한정된 공간을 빛의 시각적 표현을 통해 외부로 확산시키는 무한공간을 열어 놓는다. 이처럼 하동철이 추구한 빛의 3차원적 공간감은 다양한 공간 해석을 가능케 하며 구축적, 건축적 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를 받는다.
이번 전시는 1986년 베니스비엔날레 최초 한국 대표작가로 참가했던 하동철의 5주기 추모전이다. 이번 전시회는 "화가로서 그림 그리는 것 이외에 즐거운 일은 없다"며 구도자로서 한 인간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예술세계에 대한 치열한 고뇌와 갈등을 우리 앞에 제시하고 5년 전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그의 예술세계를 되돌아보며 그를 기억하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의 02-735-9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