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장종완은 평화로운 자연 속에 머무르는 인간과 동물의 모습, 사람들이 떠올리는 전형적인 낙원의 풍경을 그린다. 그런데 긍정적이고 이상적인 것들이 가득함에도 그의 ‘낙원 회화’는 알 수 없는 불편함과 기묘함의 분위기를 풍긴다. 한편 동물과 식물을 의인화하거나 슈퍼푸드를 보여주는 작업에서는 인간 사회에서 발견되는 맹목적인 믿음이나 숨기고 싶은 어두운 이면 등을 우화적이고 블랙 코미디적으로 보여준다. 더 갤러리 이번 회는 ‘전시장에서 볼 때는 재미있었는데 뒤돌아서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작업’, ‘세상 속에서 발견되는 의심스러운 지점을 드러내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장종완 작가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 ‘제22회 송은미술대상전’(2022)에 전시 중인 ‘뉴 슈가_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2022)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겠다. ‘낙원(에덴) 회화’라 불리는, 즉 자연을 배경으로 사람이나 동물이 머무르는 이상향의 스테레오타입을 보여주는 작업과 분위기가 비슷한데 벌이 등장한다.
작년 봄에 우리나라에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기사를 봤다. 폐사체도 발견되지 않았고 그냥 사라졌는데 그 실태와 원인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5G 신호 때문이란 이야기도 있고, 드론으로 농약을 살포해서 그렇다는 설도 있다. 겨울 기온이 예년보다 높았기 때문이란 가설도 있는데 아직 규명되진 않았다. 미스테리한 일이다. 지구에 어떤 변화가 생기면 곤충이나 동물들이 먼저 알아차리고 반응한다. 그래서 이 역시 어떤 징후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22회 송은미술대상전’ 작가로 선정된 뒤 원인을 알 수 없는 자연의 변화와 관련된 불안을 재미있게 풀어보기로 마음먹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자연환경이나 기후와 관련된 이상한 징후들이 많이 발견된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현상들이 반복되니 불길하기도 하고 불안하다. 나는 사라진 벌들이 어딘가 좋은 데에 갔을 거라고 가정했다. 그러나 행복하기만 한 풍경은 아니다. 인간화된 벌들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아낸다. 내 작업에서 동물이나 곤충이 의인화된 것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동물농장(Animal Farm)’(1945)을 생각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소설을 좋아해 ‘변신(Die Verwandlung)’(1916)의 분위기도 풍길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인간은 유토피아를 추구하고 건설하려 하지만, 인간화되는 게 꼭 좋을까?’란 질문을 담고 있다. 인간화된 벌을 통해서 인간이 자연에 발을 들이기 시작하면 오히려 안 좋은 일이 생기는 상황이나 인간 문명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 있다.
- 개인적으로 카프카의 ‘변신’은 여운이 길게 간 소설이다. 장종완의 작품은 밝은데 기괴하고, 재미있게 보다가 서늘함을 느끼게 한다. 이번 작품은 의인화된 곤충이 등장해 기묘한 분위기가 더 강하게 전달된다.
제목에 등장하는 ‘뉴 슈가’는 단맛을 내는 감미료의 상표명이다. 설탕과 비교해 약 300배의 당도를 갖기 때문에 설탕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강한 단맛을 낼 수 있다. 벌도 사라지고 가짜 설탕도 만들어지니 더 이상 진짜 꿀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제인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문장은 신자유주의 입장의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특정한 한쪽의 입장을 옹호하는 건 아니고, 편안과 행복을 위해 인간이 만들고 누린 것들이 궁극적으로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상한 징후들이 가져오는 불안함을 제목과 이미지 모두에서 전달하려 했다. 곤충의 모습을 너무 과하게 묘사하면 혐오나 공포감이 클 것 같아 묘사의 정도를 결정할 때 고민을 많이 했다.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새나 벌레는 자세히 보면 형태적으로 무서운 부분이 있다.
- 이전부터 자연과 동물들이 등장했지만, 최근작들은 그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점점 생태주의나 자연 중심적인 태도가 느껴지고 인간이 아닌 존재를 생각하는 작업들이 보인다. ‘팬데믹 별자리’(2020~2021)도 그렇고,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독립성과 관계,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영향까지 염두에 두는 것 같다. 또 인간사나 인간이 만들어낸 이상향의 이미지를 다루고 있음에도 인간이 만든 문명보다는 자연에 가까운 세계가 등장하고 인간 사회의 이면을 의인화된 동물이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인간 세상을 그리는데도 자연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내가 자연에 관심이 많다 보니 계속 자연에서 이미지를 가지고 와서 변형하거나 의인화하게 된다. 자연히 관찰을 많이 하고 변화도 더 잘 발견하는 것 같다. 무엇 때문인지 원인은 확실하지 않지만, 일정 부분에서 이상 징후들의 원인이 인간이라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지금 생각난 건데 어릴 때 바닷가나 산을 경험할 기회가 많았다. 내가 살던 울산에는 공장도 많지만 산과 바다도 많다. 그 둘이 묘하게 공존하는 곳이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어서인지 그림을 통해서라도 자연을 가까이 두고 싶은 욕구가 있나 보다. 비록 작업에서 다루는 내용이 밝고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어도 일단 시각적으로 산과 물에 둘러싸이면 기분이 좋아진다.
-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자기모순 등을 생각하게 하는 작업으로 ‘가죽 회화’도 떠오른다. 동물의 죽음(가죽) 위에 그려진 낙원의 모습은 인간이 원하는 삶을 위해 일어난 희생을 보여주는 것 같다.
‘가죽이 되기 전, 살아있던 동물은 좋은 곳에서 뛰놀지 않았을까, 죽은 뒤 좋은 곳에 갔을까?’와 같은 상상, 동물에 대한 애도에서 ‘가죽 회화’를 시작했으니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인간이 다른 존재들의 희생 위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가죽 회화’는 언젠가 인연이 되면 또 할 수 있을 것이다. 종료된 것은 아니다. 만약 다시 하게 되면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까 고민할 때도 있다. ‘가죽 회화’뿐 아니라 나의 연작들, 애니메이션 모두 진행 중이다.
- 잘 알려진 것처럼 장종완의 작품에 등장하는 풍경은 종교 전단지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 지금도 전단지를 수집하는가?
‘낙원 회화’는 시작할 때 종교 전단지에서 영향을 받았고 구도도 차용했다. 전도하려는 사람들이 집을 방문해서 준다거나 우편함에 넣어놓기도 한 것들이다. 워낙 키치적인 그림에 관심이 많아 소위 이발소 그림이나 달력에 자주 등장하는 전형적인 풍경, 좋은 것들을 다 모아놨는데 부조화스러운 그림에 관심이 많기도 했다. 그것을 어떻게 작업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대학생 때 택시기사님이 주신 전단지를 보다 ‘낙원 회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긍정적인 이미지들의 범벅인데 왜 괴상한 느낌이 드는지, 믿음보다는 의심이 생기는지 등을 함께 생각하고 싶었다. 실제로 개인전 때 특정 종교와 관련된 분들이 나를 찾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종교 전단지에도 시대의 변화가 담긴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전단지 속 이상향을 사람이 그려서 손맛이 전달되는 회화적 이미지들이 많았다. 지금은 포토샵 같은 디지털 작업으로 이미지를 만든다. 그래서 요즘 받는 것들은 이전보다 시각적으로 덜 재미있는 것 같다.
- 최근 작품들에 작가가 등장한다. 울산시립미술관 개관특별전 ‘포스트 네이처: 친애하는 자연에게’(2021)에 출품했던 ‘슈가캔디마운틴(2021)’에서는 그림 그리고 있는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의 ‘화가의 작업실: 화가로서의 7년 생활이 요약된 참된 은유’(1855)가 떠올랐다.
초반에 인물을 그리긴 했지만, 그동안 동물을 더 많이 그렸다. 몇 년 전부터 인물을 다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누구를 모델로 삼아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일단 내가 가장 잘 아는 나에서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슈가캔디마운틴’은 울산이란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라 더 내 이야기, 내가 그림 그리는 장면을 넣고 싶었다. 쿠르베의 작업은 생각하지 않았고, 키치적인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후로도 자화상을 몇 점 그렸고 지금은 내가 아닌 인물로 이동하는 중이다. 특정한 사람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을 그리려 하고 있다. 어쩌면 인물이 식물이나 동물처럼 변형될 수도 있을 것 같다.
- 최근 몇 년 동안 주목받는 작가로 많은 전시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감사하게도 번 아웃이 오는 게 아닌가 걱정할 정도로 바빴다. 작년의 활동 중에는 미디어파사드 작업이 기억에 남는다. ‘2022 ACC 미디어파사드’에서 ‘내가 돌아온 날 그는 떠났다’(2022),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잠실점 파사드에서는 아워레이보, 디폴트와 함께 ‘Christmas Dream Moments’(2022)를 선보였다. 공적 공간에 대중을 주 대상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새롭기도 하고 쉽지 않았다. 또 내 작업에 어두운 면이 있다 보니 미술관이나 갤러리 전시와는 다르게 조율이 필요했다. 아직은 손이 빠른 편이라 많은 전시와 신작 제작을 감당할 수 있었는데 작업의 깊이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성 있게 작업에만 몰두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올해는 연구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긴 호흡으로 회화에 집중해 작업할 예정이다.
- 2023년의 계획은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 회화 작업에 집중하려 한다. 밖으로 내 작업을 드러내기보다 작업에 흠뻑 빠져있을 것 같다. 자연 속에 인물이 등장하는 그림을 그릴 것 같고, 더 풍성한 내용으로 ‘낙원 회화’ 시리즈를 끌고 가고 싶다. ‘슈가캔디마운틴’ 이후 작품 크기의 한계를 깨뜨릴 수 있었다. 그 정도의 대작을 많이 하지 않았었는데 막상 완성하고 나니 노하우도 생겨서 보다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