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이슈] LG아트센터 ‘벚꽃동산’ 이어 ‘헤다 가블러’에 시선 쏠리는 이유

배우 이영애 32년만의 연극 복귀작

김금영 기자 2025.04.18 17:40:20

연극 ‘헤다 가블러’가 LG아트센터 서울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은 개관 25주년을 맞은 LG아트센터가 야심차게 선보이는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배우 이영애의 32년만의 연극 복귀작이기도 하다.

헨리크 입센 1890년 작…억압 속 자유 갈망하는 여성 심리 탐구

연극 '헤다 가블러' 포스터. 사진=LG아트센터

헤다 가블러는 세계적인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1890년에 집필한 고전 명작으로, ‘여성판 햄릿’으로도 불리는 작품이다. 주인공 헤다 가블러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귀족 여인이다. 하지만 그녀의 이면엔 불안, 욕망과 파괴적인 본성이 숨겨져 있다. 헤다는 결혼 후 권태를 느끼던 중 옛 연인 에일레트를 만나고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작품은 사회적 제약과 억압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여성의 심리를 탐구한다.

이번에 공연되는 헤다 가블러는 영국 공연예술상인 올리비에상의 베스트 감독상, 베스트 리바이벌상(2006) 수상작이자, 본 작품을 각색하고 직접 연출한 바 있는 리처드 이어가 현대적으로 각색한 버전을 바탕으로 한다.

연극 '헤다 가블러' 제작 발표회에 참석한 (왼쪽부터) 이현정 LG아트센터장, 전인철 연출, 배우 김정호·이영애·백지원·지현준·이승주. 사진=김금영 기자

연출은 제54회 동아연극상 연출상의 주인공인 전인철이 맡았다. 이번 공연을 통해 첫 대극장 무대 연출에 도전하는 전인출은 135년 전 쓰인 원작의 본질은 지키되, 현대적 시선과 감각을 입힌 보다 강렬하고 보편적인 심리극으로 재탄생시킬 예정이다. 그는 “헤다 가블러는 1890년데 쓰였지만, 읽을수록 대단히 현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인이 지닌 불안과 욕망을 잘 드러내 2025년 동시대 관객에게도 충분히 공감과 울림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입센의 희곡 속 인물들, 특히 여성 캐릭터들은 오랜 시간 내게 관심의 대상이었다. 삶의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여성들을 보면서 ‘저들이 지닌 저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행동하게 하는가’ 질문을 던지곤 했다”며 “이번에 그 질문을 무대에서 풀어낸다”고 말했다.

이영애 “적기에 만난 헤다 가블러 운명 같아”

배우 이영애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LG아트센터

공연의 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핵심 인물인 헤다를 이영애가 연기한다. 특히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돌아오는 이영애는 “헤다 가블러는 운명처럼 다가온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20대 때 ‘짜장면’이라고, 김상수 작, 연출을 한 연극을 한 적이 있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개관작이었다. 당시 지하철역에서 공연 전단지도 돌리고, 포스터도 붙이는 등 시키는대로 다 했던 기억이 있다”며 “이후에 여러 영화,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아쉽게도 연극과는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가 이번에 좋은 기회가 닿았다”고 말했다.

연극 복귀작으로 헤다 가블러를 선택한 건 캐릭터에 끌린 영향도 있었다. 이영애는 “만약 20대 때 헤다를 연기했다면 잘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결혼, 출산, 육아를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느낀 감정들이 연기자로서 자양분이 됐고, 이것들이 헤다에 다가가는 데 더 도움이 된 것 같다”며 “너무 나이가 어리거나 더 나이가 들면 소화하기 힘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 딱 적기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영애 주연 연그 '헤다 가블러' 첫 리딩 현장. 사진=LG아트센터

현재는 자신만의 헤다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이영애는 “자기 작품에 100% 만족하는 배우가 과연 있을까. 작품이 끝날 때마다 ‘더 잘 할 걸’ 하며 부족한 점들이 떠오르곤 한다. 올 하반기 방송 예정인 드라마 촬영을 끝내고 나서도 아쉬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가운데 만나게 된 헤다를 만들기 위해 동료 배우들, 연출진과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공부하고 있다. 이런 공동 작업이 매우 즐겁다”며 “대사가 너무 많아 힘들고, 무대에선 절대 NG가 있어선 안 되니 체력적으로도 힘들다.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도 있다. 하지만 영화, 드라마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고 말했다.

전인철 연출 또한 “헤다라 하면 무겁고 우울한 이미지가 많이 이야기되는데, 이영애 배우가 만들어가는 헤다를 보며 다양한 감정과 표현을 지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헤다는 어찌 보면 안하무인 같지만,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사람과 교류하며 살아가려는 내면의 갈등도 있다. 이런 헤다의 다양한 내면을 이영애가 매순간 집중해 찾아가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헤다는 좀 무서운 인물이기도 한데 이영애 배우는 같이 연습해보니 귀엽고 사랑스러운 면도 많다. 그렇기에 보다 헤다의 여러 면을 무대 위에서 펼칠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덧붙였다.

이현정 센터장 “국내 넘어 해외 관객 만난다”

마곡동에 위치한 LG아트센터 서울. 사진=김금영 기자

LG아트센터는 LG그룹이 ‘문화예술 창작과 교류를 통한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취지로 세운 종합예술공연장이다. 1998년 구본무 당시 LG회장이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예술 공연을 국민들이 볼 수 있게 소개하라”고 당부하며 건립됐다.

LG아트센터는 2000년 개관 이후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역삼동 개관 초기에 장진 감독과 선보였던 연극 ‘박수칠 때 떠나라’(2000)와 ‘웰컴 투 동막골’(2002)은 이후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양정웅 연출의 ‘페르 권트’(2008년 초연)는 ‘대한민국연극대상’에서 대상, 연출상, 무대예술상을 석권한 뒤 일본, 중국, 호주 투어 공연에 이어 한일배우들 합작 일본 버전으로 새롭게 만들어져 공연하기도 했다.

그렇게 역삼동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 잡았던 LG아트센터는 2022년 마곡지구로 이전하며 마곡동 시대를 열었다. 2556억원의 큰 비용을 들였지만, 국민 문화향유를 위해 설립한 취지에 맞게 공연장을 서울시에 기부채납 후 사용 수익권을 확보해 LG연암문화재단이 20년 동안 운영하는 형태로 재개관했다.

 

새로운 장소에서 다시금 관객에게 공간을 각인시켜야 하는 미션 속 LG아트센터는 지난해 세계적인 연출가 사이먼 스톤과 배우 전도연, 박해수의 만남을 성사시킨 글로벌 프로젝트 ‘벚꽃동산’이 흥행하며 대중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데 성공했다. 1300석 대극장이 한 달 동안 매진되며 4만 명 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LG아트센터가 선보인 '벚꽃동산'은 올 하반기 홍콩, 싱가포르 등 해외 투어를 앞두고 있다. 사진=LG아트센터

LG아트센터 이현정 센터장은 “2000년 개관 이래 25주년, 마곡동에서 4년 차를 맞이한 LG아트센터는 그간 세계적 거장의 좋은 작품들을 국내에 소개하며 관객, 예술가들에게 영감과 자극을 주고자 노력했다”며 “이중 하나인 벚꽃동산은 세계적인 연출가와 한국 최고의 배우들이 만나 고전을 오늘의 한국의 이야기로 생생하게 변환시켜 공감을 이끌어낸 아주 특별한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해당 공연은 전도연, 박해수의 출연으로도 화제가 됐다. 특히 전도연은 1997년 ‘리타 길들이기’ 이후 27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섰다. 이현정 센터장은 “굳이 연극, 영화, 드라마 분야를 나누지 않고 좋은 배우가 무대에 돌아올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것도 LG아트센터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를 통해 연극 저변을 확대하고, 더 많은 관객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엔 헤다 가블러가 그 맥락을 잇는다. 이현정 센터장은 “이영애 배우는 LG아트센터가 역삼동에 있을 때부터 연극을 보러 자주 왔다. 평소 연극 무대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을 통해 전해 들으며 언젠가 작품을 같이 하고 싶다 꿈 꿨는데 이번에 실현됐다”며 “이영애는 ‘대장금’의 우아하고 단아한 이미지부터 ‘친절한 금자씨’, ‘공동경비구역 JSA’ 등 강한 캐릭터까지 다채롭게 소화하는 연기자여서 헤다 역에 딱 걸맞다고 생각해 제안했다. 이번 무대를 나 또한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올라가는 국립극단의 연극과의 비교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국립극단은 5월 1일부터 6월 1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동명의 연극을 올린다. 국립극단은 2012년 해당 공연의 국내 초연을 선보여 전회차 전석 매진을 기록한 바 있다. 초연 당시 헤다 역을 맡았던 배우 이혜영이 이번에도 헤다로 무대에 선다. 이혜영은 13년 전 이 작품을 통해 제5회 대한민국연극대상 여자 연기상, 제49회 동아연극상 여자 연기상을 받은 바 있다.

연극 '헤다 가블러' 전인철 연출. 사진=LG아트센터

이현정 센터장은 “차별화 포인트는 각색본이다. 어떤 각색본을 바탕으로 무대에 올릴지 전인철 연출과 논의 과정을 거쳤고, 그 결과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캐릭터들의 관계성을 더 정교하게 파고든다”고 말했다.

전인철 연출은 “리처드 이어의 각색본이 여성을 비극적인 희생자나 충동적인 인물이 아닌, 자기 삶의 방식대로 행동하는 입체적인 인물로 표현하고 있고, 직접적이고 간결한 표현으로 각 인물간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춘 부분에 매료됐다”며 본 각색본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극작가 리처드 이어 또한 LG아트센터를 통해 “여성, 가부장제, 계급에 대한 태도가 급격히 변화했지만, 헤다라는 인물은 여전히 오늘날 관객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며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자기 세계에 갇힌 자기중심자들로, 오늘날 타인과의 연결을 부정한 채 소셜미디어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결코 고립된 섬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공연을 통해 인식하길 바란다”고 짚었다.

이 점에서 돋보이는 게 동시대성이다. 특히 LG아트센터는 동시대성을 지닌 공연, 또는 각색, 해석의 공연으로 호평을 받아왔다. 이현정 센터장은 “역삼에서부터 현재까지, LG아트센터는 늘 동시대성을 추구하는 작품을 선보여 왔다. 무대는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 현재 우리의 삶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몇 백, 몇 천 년이 된 고전을 선보일 때도 현재 관객에게 공감을 사기 위해선 동시대성이 반영된 해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표적으로 벚꽃동산은 연출, 무대, 배우 모두 훌륭했지만 100년 전 러시아 이야기가 오늘의 한국의 이야기로 바뀌었다는 데 매력을 느낀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고 생각한다”며 “헤다 가블러 또한 동시대적 감각으로 관객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낼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이현정 LG아트센터장. 사진=LG아트센터

이런 동시대성 공연으로 국내를 넘어 글로벌 관객까지 더 폭넓게 만난다는 포부다. 실제로 LG아트센터가 선보인 벚꽃동산은 올 하반기 홍콩, 싱가포르 등 해외 투어를 앞두고 있다.

이현정 센터장은 “벚꽃동산은 세계의 많은 극장들로부터 투어 요청을 받고 있다”며 “몇 년 전부터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졌는데, LG아트센터 또한 그간 쌓아온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단지 해외의 좋은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대로 우리가 만든 작품이 세계의 많은 관람객을 만나는 장을 만들고자 한다. 헤다 가블러 또한 그 과정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현재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며 “헤다 가블러를 비롯한 작품들이 많은 관심을 받아서 지속가능한 작품으로 남아 오랜 시간 보다 많은 관객을 만나길 바란다. 지금 이 시대에 봐야 할 작품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공연은 LG아트센터 서울, LG 시그니처홀에서 5월 7일부터 6월 8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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