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 선화랑, 영국 현대미술 작가 6인을 한자리에 모으다

기획전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The Way We Love Now’ 선보여

김금영 기자 2025.09.26 12:03:46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6인이 선화랑에 모였다. 이들을 모이게 한 건 ‘고요한 관찰’을 통해 바라본 ‘도시의 일상’.

일상의 낯익음 속 특별함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The Way We Love Now'전 현장. 사진=김금영 기자

선화랑이 기획전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The Way We Love Now’을 마련했다. 아침을 깨우는 휴대폰 알림음, 후진하는 자동차의 경고음, 빗방울이 떨어지는 거리, 카페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빠르게 달리는 배달 오토바이 등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흔한 풍경들이다.

런던에서 온 여섯 작가들은 이런 도시의 일상을 예술로 바꿔 화면에 담았다. 시끄럽고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은 그들의 손길을 통해 잠시 화면에 멈춘 듯 고요하다. 특히 이들은 화려한 장면을 좇기보다 일상에 숨은 본질에 집중한다. 누군가에겐 평범할 수 있는 일상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특별한 의미를 지닌 날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6인이 선화랑에 모였다. 사진=김금영 기자

또 이들을 연결시켜주는 고리가 ‘색과 분할’이다. 도시의 풍경은 다채롭고 때로는 분열돼 있지만, 참여 작가들은 이를 절제된 색과 독창적인 분할을 통해 재해석한다. 즉 이들의 작업에서 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감정과 분위기를 전달하는 언어로 작용한다.

전시는 선화랑, 이안 로버트슨 교수, 클레어 기획자가 공동 기획했다. 클레어는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던 작가 6명은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상을 화면에 담았다. 우리는 그들의 화면을 통해 낯익음 속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낯익음 속 특별함을 발견하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안 로버트슨 교수는 “작가들은 런던에서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 포착한 순간들을 그렸다. 특히 다양한 이주민이 공존하는 런던이라는 큰 도시 안에서 개개인의 고립감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이런 도시적 특성과 더불어 작가들의 다양한 해석이 담긴 작품들을 모았다”며 “작가들은 시적이고 회화적인 내면 성찰을 공유된 언어로 삼으며, 관찰과 기억을 통해 일상의 파편을 계시로 전환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도시의 장관을 그저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의 파편 속에서 존재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는 행위이며, 가장 심오한 진실은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 머무는 것’임을 일깨워 준다.

그럼에도 일상에 존재하는 ‘희망’

전시장 2층 전경. 사진=김금영 기자

1층엔 어찌 보면 꿈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일상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이 설치됐다. 먼저 로자 호로위츠는 해가 뜨고 지는 순간의 오렌지 빛깔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을 선보인다. 그의 화면 속 인물들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부유한다. 색채를 통해 그는 질투, 순수, 악의 등 인간 감정의 극단을 화면이라는 자신의 무대 위에 올린다.

이번 전시에 앞서 지난해 선화랑을 통해 한국 첫 개인전을 가진 바 있는 파토 보시치의 작품이 이어진다. 그는 산책에서 마주한 런던의 석양 풍경에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신화적인 요소를 가미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예컨대 ‘별자리 성’은 작가의 스튜디오를 은유한 콜라주로, 성곽의 파편, 런던 거리, 폭풍우에 휩쓸린 폐허 등이 뒤섞였다.

 

파토 보시치는 “내 작업에서 스튜디오는 중요 요소다. 내 런던 스튜디오에서 익숙한 요소들을 끌어와 내가 경험한 런던 풍경의 특별함과 결합시킨다”며 “화면엔 실존하는 건물도, 지인의 형상도 있다. 이 상상력의 경로는 창조적인 세계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화면엔 버스정류장, 길거리 등 일상 풍경들이 눈길을 끈다. 사진=김금영 기자

2층 전시장의 작품들은 보다 현실적인 풍경들이 눈길을 끈다. 세바스티안 에스페호는 일상 속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작은 꽃 등 자연의 풍경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느끼는 일상에의 소속감, 연대감이 화면을 통해 드러나는 듯하다. 이처럼 에스페호는 사소한 것 속에서 전체를 발견하며, 그 고요함 속에 강렬한 의미를 부여한다.

토머스 캐머런은 절제되고 억제된 태도로 런던의 거리를 다룬다. 그가 그린 패스트 푸드점, 카페, 버스정류장의 일상들은 어두운 색감으로 그려지며 마치 영화의 한 장면 또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도 준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감 속 파란색, 빨간색 등 눈길을 끄는 강렬한 색감이 조화를 이루며 화면을 완성한다.

탐신 모스는 삶을 무대처럼 바라본 작업을 보여준다. 특히 그는 가면을 벗은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엘피스’에서는 거북이 무리가 개의 위협 속에서 희망을 상징하며, 소용돌이의 에너지가 인간과 동물을 감싼다. 그의 작업은 색채를 통해 서사를 시각적 연극으로 변환한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최지원 작가는 런던과 서울을 자주 오가는 경험을 반영해 작품에서 시차가 발생한 것처럼 시간이 뒤틀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진=김금영 기자

마지막으로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최지원 작가는 런던과 서울을 자주 오가는 경험을 반영해 작품에서 시차가 발생한 것처럼 시간이 뒤틀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어디서 본 것 같지만, 또 확실히 단언할 수 없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것 같은 일상을 표현한다. ‘연인들’엔 어떤 박물관을 방문한 인물들이 보이는데, 시공간을 가늠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낭만주의의 현대적 해석에 대한 논문을 작성한 바 있는데, 여기서 주관성은 주요 키워드다. 나 또한 작업을 할 때 주관적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미세한 감정을 포착한다”며 “작품을 보는 관람자 또한 낭만주의적 태도와 결부돼 있다고 생각한다. 이 아래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선화랑 원혜경 대표는 “현대인의 삶은 어려움, 허무함, 고독감이 혼재한다. 이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경험하는 일상”이라며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각자가 발견한 희망은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이처럼 작가 6인의 다채로운 시선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통화랑 선화랑의 변화

선화랑 외관. 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는 글로벌적 행보를 이어가고자 하는 선화랑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는 전시이기도 하다. 1977년 문을 연 선화랑은 평면회화, 국내 원로 작가 위주의 전시를 선보이며 국내의 대표적인 전통 화랑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보수적’이라는 인식도 생겼다.

원혜경 대표 또한 “이를 인지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번 전시는 전통적인 자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국제적 교류로 화랑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전통 화랑이 변해야 한다는 흐름의 일부분으로, 선화랑은 해외 미술 전시에도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려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일환으로 선화랑은 지난해에도 파토 보시치 개인전을 선보인 바 있고, 올해 4월엔 프랑스의 AI(인공지능) 아트 그룹 오비어스(Obvious)의 전시를 열어 눈길을 끌었다. 과거 창립자 김창실(1935~2011) 작고 이후 2011년부터 며느리인 현재 원혜경 대표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시대변화의 흐름에 맞춘 전시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원혜경 대표는 “지난해 파토 보시치의 전시를 선보였을 때 ‘선화랑이 이런 전시도 하냐’며 새로운 변화에 놀랐다는 피드백도 받았다. 구상과 초현실주의에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기본이 탄탄한 전시로, 지난해 키아프에서도 반응이 좋았다”며 “이번 영국 전시의 경우 현대미술 트렌드에서 영국이 중요한 흐름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안 러버트스는 “영국은 과거 개념미술에서 현재는 서사와 스토리텔링 중심의 페인팅으로 흐름이 옮겨지는 추세”라고 부연했다.

원혜경 대표는 “이번 전시를 통해 좀 더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선화랑의 움직임도 볼 수 있기를 바란다”며 “선화랑은 해외 미술 전시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동시에 국내의 재능 있는 작가들을 바깥 세상에 내보내는 것 또한 고심 중이다. 앞으로도 선화랑의 지평을 넓혀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21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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