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 ‘벼’, 신세계에서 예술이 되다

신세계백화점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 ‘쌀의 직조’전

김금영 기자 2025.10.21 08:34:21

신세계백화점 본점 더 헤리티지 5층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 입구. 사진=김금영 기자

여름 무더위를 가시게 한 시원한 푸른빛이 가득했던 공간이 이젠 따뜻함을 머금은 황금빛 가을로 물들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더 헤리티지 5층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가 마련한 가을 특별전 ‘쌀의 직조’ 현장 풍경이다.

한국인 의식주 지탱해온 벼의 존재

볏짚을 활용한 다양한 아카이브가 전시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지난여름, ‘여름이 깃든 자리’가 머물렀던 자리에 이번엔 가을이 찾아왔다. 전시의 중심엔 가을을 대표하는 작물 ‘벼’가 있다.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는 매 전시마다 주요 소재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텔링을 펼쳐 왔다. 지난 전시에선 조선시대 양반과 선비들의 사교모임이자 사회 활동이었던 ‘계회’를 중심으로, 자연을 벗 삼아 무더위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즐기던 선조의 지혜를 다양한 전통 공예를 통해 보여줬다.

이번 전시에선 가을을 대표하는 작물 ‘벼’를 주제로 선정해 이야기를 꾸렸다. 신세계 아트앤스페이스팀 노유경 파트너는 “벼라고 하면 대부분 먹는 걸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는 벼가 지닌 주요 기능이지만, 이뿐만 아니라 볏짚으로 짚신, 망태 등 일상용품을 만들고, 초가집을 짓는 데 쓰이는 등 벼는 과거부터 오랜 시간 한국인의 의식주를 지탱해 온 주요 소재”라며 “이번 전시는 이런 벼의 다양한 면모를 들여다보며, 벼와 함께한 우리의 일상 문화까지 살핀다”고 말했다.

한식연구소는 직접 연구, 개발한 제품들을 통해 밥, 떡, 술 등 다양한 형태로 주된 먹거리의 역할을 해온 벼의 면모에 접근한다. 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는 벼와 관련된 다양한 아카이브를 보여주기 위해 신세계백화점 한식연구소, 온양민속박물관, 짚풀생활사박물관과 협업했다.

먼저 한식연구소에서 직접 연구, 개발한 제품들을 통해 밥, 떡, 술 등 다양한 형태로 주된 먹거리의 역할을 해온 벼의 면모에 접근한다. 2021년 설립된 한식연구소는 한식의 본질을 연구, 가치를 이어가는 역할을 수행하는 곳으로, 한식 식자재를 판매하는 ‘발효:곳간’과 한식 레스토랑 ‘자주한상’, 한국 전통 다과 문화를 현대적으로 즐기는 ‘디저트 살롱’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쌀을 활용한 스파클링 막걸리, 탁주 등 다양한 먹거리를 내놓았고, 디저트 살롱은 전시 기간인 9~11월 월별 계절 메뉴를 선보인다.

전시장 한켠에 짚을 활용한 귀여운 공예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김금영 기자

노유경 파트너는 “벼 이삭에서 거둔 쌀은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한 예로 전시에 소개된 ‘소식재배미’는 농가와 사전 계약을 통해 평당 식재되는 벼의 수를 줄이는 대신 좀 더 품질을 높인 벼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중 한국 토종벼 품종 중 하나인 ‘귀’ 등도 소개한다”며 “이처럼 벼가 지닌 직관적인 이미지를 통해 한국적 DNA를 따라간다”고 말했다.

벼의 활용성에도 주목한다. 수확 뒤 남은 볏짚은 생활용품부터 건축까지 일상 전반에 활용돼왔다. 대표적으로 초가집의 가르마와 같은 역할인 ‘용마루’ 등 초가지붕을 엮는 방식을 소개하면서 견고함, 경량성, 단열효과 등을 갖춘 소재로서 볏짚의 장점도 살핀다. 동시에 짚신, 멍석 등 짚이 함께하는 일상을 담은 사진 자료들도 전시하며 삶 곳곳에 자리 잡았던 짚의 실제 모습을 전한다.

일상 둘러싼 짚공예

김태연은 사용하는 쉽게 버려지는 비닐 쌀 포대를 해체해 다시 직조해 공예품으로 새 삶을 불어넣었다. 사진=김금영 기자

짚공예의 예술적 면모에도 다가간다. 짚공예 조합 협동조합 느린손, 짚 풀 명장 김준환, 공예가 황정화, 섬유 공예가 김태연, 도예가 김정옥 등이 이번 전시에 함께 했다. 이를 통해 짚공예의 장인 정신까지 함께 살펴보는 동시에 새로운 재료와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더 확장, 계승한 오늘의 직조 공예도 선보인다.

노유경 파트너는 “짚공예는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볏짚을 사용해 남녀노소 누구나 해온 민중의 공예로 바로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었다”며 “이처럼 멀리 있는 어려운 예술이 아니라 친근한 생활예술로서의 짚공예를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연이 사용하는 주된 재료는 비닐 쌀 포대다. 쉽게 버려지는 비닐 쌀 포대를 해체해 다시 직조해 공예품으로 새 삶을 불어넣었다. 우리 공예 문화의 가치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친환경 의미까지 담은 작품이다.

전시장 마루 공간엔 김준환 명장이 짚 풀을 활용해 만든 다양한 돗자리를 깔아놓았다. 사진=김금영 기자

황정화 작가의 ‘용마름 책 쉼터’도 눈길을 끈다. 초가지붕을 엮던 짜임을 활용해 책 선반을 만들었다. 노유경 파트너는 “황정화 작가는 직접 토종 벼 재배도 해봤을 만큼 소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각별하다”며 “오늘날 변화된 생활환경과 쓰임새에 맞춰 전통 공예를 현대적으로 이어가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시장 마루 공간엔 김준환 명장이 짚 풀을 활용해 만든 다양한 돗자리를 깔아놓았다. 여기에 구본창 작가의 사진도 함께 배치해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벼의 존재를 다방면으로 느끼게 한다. 전시장에서 마루는 일상의 공간이자, 장인의 공방이 된다.

'쌀의 직조'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 공간. 사진=김금영 기자

마루 옆 공간엔 짚공예의 기초인 새끼 꼬기 방식으로 탄생한 새끼줄부터, 벼가 생활용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여러 공예품들을 배치해 놓았다. 새끼 꼬기 방식은 시계 방향인 오른쪽으로 꼬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지만, 반시계 방향으로 꼰 새끼줄은 금줄로 사용돼 일상과 신성한 공간을 구분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또 어떻게 꼬느냐에 따라 길이도 다양해졌다. 이 다양한 새끼줄들은 전시장에 걸어 놓았다. 이 밖에 망태, 주루막 등 오늘날 가방과 비슷한 용도의 물건에서도 독특한 짜임새의 새끼줄들이 눈에 띈다.

 

다양한 벼의 변주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도 볼 수 있다. 떡과 술을 만들기 위해 쌀을 발효하던 옹기도 이 중 하나다. 또한 도예가 김정옥은 전통 분청사기의 박지문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합 작품을 선보인다. 가을의 풍요를 기념해 쌀과 떡을 소중한 이들과 나누던, 나눔의 정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전시장 곳곳엔 벼가 만든 가을의 흔적이 가득하다.

전시는 벼와 관련된 다양한 아카이브를 보여주기 위해 신세계백화점 한식연구소, 온양민속박물관, 짚풀생활사박물관과 협업했다. 사진=김금영 기자

노유경 파트너는 “이번 전시는 단순 식량이 아니라 풍요의 시즌인 가을, 가족을 먹이고 공동체를 잇는 기반이자 생활예술로서 폭넓게 우리의 삶을 이어 온 벼의 가치를 들여다본다”며 “특히 볏짚을 활용한 공예품들의 정교함과 아름다움은 한국인의 특별한 손재주를 현대적으로 이어온 장인들의 노력 또한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런 짚 문화와 역사를 보다 깊이 경험할 수 있는 워크숍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짚풀생활사 박물관 이정아 학예사가 진행하는 ‘짚, 한국인의 삶과 함께 하다’ 강연을 포함, ‘전통 짚공예 체험’ 등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시간을 마련해 짚과 함께한 우리의 가을을 보다 다채롭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도예가 김정옥은 전통 분청사기의 박지문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합 작품을 선보인다. 사진=김금영 기자

김경은 하우스오브신세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가을을 맞아, 오랜 시간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먹거리면서, 가장 흔히 사용돼 온 생활 소재인 벼를 주제로 이번 가을 기획전을 준비했다”며 “쌀의 직조가 소개하는 우리 삶 속 짚과 쌀의 의미, 다양한 전통 짚공예품과 쌀 먹거리, 다채로운 체험 콘텐츠들과 함께 벼가 짓고 엮어온 한국인의 삶과 문화의 풍요로움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다음달 30일까지.

한편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는 공예 전시장으로, 한국적 생활 방식과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 계승되는 한국 문화와 장인 정신을 오롯이 경험하며 궁극적으로 ‘한국의 미’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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